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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人 칼럼

아픔 없이 오는 행복은 없다. -아파도 참는게 인생(忍生)이다.


아픔 없이 성장하는 생명체가 있을까?
아마도 암 환자에게 무한 아픔을 주는 암세포도 자기도 아플 것이다. 아파트 옥상 테라스에 아끼던 분재와 꽃 화분을 내 놓았는데, 밤사이에 키 큰 가지들이 모두 쓰러졌다. 넘어지고, 꺾이고, 비틀어졌다. 보기가 흉하여 마음이 아팠다.
‘쓰러진 꽃을 버리는 것이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길이다.’라고 잔인한 생각을 할 때, 또 다시 바람이 불어서 넘어지고 비틀린 것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스스로 정리를 했다. 키 작고 건실한 줄기만 살아남아 다시 꽃(제라늄)을 피웠다. 신기했다. 더 신기했던 것은 작년에 쓰러진 줄기의 밑 부분을 베어내고 여린 줄기로 가지 접목을 했는데 새싹을 피웠다.

파주로 이사하고 창틀에 끼인 이물질을 쉽게 한 번에 제거하려다가 손톱을 깨트렸다. 물론 소량의 피도 났다. 손톱 사이로 피가 솟으면서 세상에 쉬운 일도, 공짜도, 한 번에 되는 일도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쉽고 편하게 살려고 했던 마음 자세를 반성했다. 이사를 하고 짐을 풀면서 장교로 임관할 때 수립한 인생계획서를 보았다. <군인의 길, 한길로 매진하여 국가와 민족을 이롭게 한다. 군인으로 죽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다.> 청년 시절의 기상에 잠시 뭉클하면서도, 달라진 인생에 우울했다. 30년 전의 나의 제1의 인생계획서에는 실패와 실수, 손실과 낭패, 좌절과 상처라는 어두운 계획, 위기가 오면 어떻게 하겠다는 우발 계획도 전혀 없었다. 미래의 아픔을 예측할 수 없었기에 인생계획서에는 큰 아픔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다.

제1의 인생계획서는 인생 과업이 추상적이었고, 진급과 출세라는 본심을 영광으로 미화되어 있었다. 제1구간 인생은 전투적인 경쟁으로 즐거운 일마저 아프게 했고, 제일주의의 풍토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평화를 잃었다. 진급과 좋은 보직이 행복인 줄 알았다. 나의 일은 높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면서도 타인의 일의 가치는 낮추려고 했다.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외로운 생활을 해야 했다. 일은 즐거운 삶을 위한 수단에 불가했는데, 일이 전부인 줄 알았던 것이다. 시인 류 시화의 잠언시집처럼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일이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평온하고 행복한 제2의 인생을 위해, 운명이라는 단어로 과거를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계획서를 작성했다. <행복한 사람의 길을 가자. 영혼을 찾아서 가까운 사람부터 즐겁게 하고, 산 자의 행동 특권을 마음껏 누려서 진정한 행복을 만들고, 세상에 흔쾌하게 동참하여 인류의 행복을 한 차원 높게 진보시키자.>

고난과 시련 극복 없이 감동을 주는 소설의 주인공이 있는가? 흔들리지 않고 달리는 마차,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있는가? 없다. 오래 전부터 일을 쉽게 하려고 하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인생은 고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밥도 뜸을 들여야 맛있다. 일을 이루려면 최소 3번의 실패를 거쳐야 한다.(삼세판) 양지가 음지 된다. 바람이 불어야 식물이 강하게 자란다. 나쁜 날씨가 사람을 부지런하게 한다. , 인생은 고난을 극복하는 드라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갈 때 진화(進化)하는데, 쉽게 살려고 하면, 힘든 일을 기피하고, 아픔이 오면 두려워하고, 몸과 마음은 약해지고, 말은 표현 수단에 불가한데 말로 승부를 걸려고 한다.

아무리 화려한 포장도 내용물이 될 수 없는데 껍데기 포장술로 유혹하고, 얼굴을 꾸미고 성형해도 마음까지 고와지는 것은 아닌데 예쁜 얼굴 만들기에 집착한다. 전문 지식은 한 분야에 대해 조금 더 아는 것에 불가한데 전문지식으로 권위를 세우려고 하고, 높은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은퇴해서도 전관예우와 특별연금을 받으려고 한다. 쉽게 살려는 풍조는 위아래가 없다. 이대로 쉽게 살려는 풍조가 계속되면 육체는 생산성을 잃고, 정신은 무사안일과 두려움, 성급함과 자괴감에 빠져 강인함을 잃는다. 아픔을 기초로 아름다운 행복을 찾는 여행을 해보자.

열매는 꽃을 통해서 오고, 가을꽃은 여름 폭풍우를 겪은 뒤에 핀다. 행복은 아픔을 이기고 온다. 인간은 아픔으로 행복을 빚는 도공이다. 누구나 하나씩의 아픔, 친구에게도 털어 놓지 못하는 깊은 아픔이 있다. 정신적 아픔, 식탐과 운동부족으로 건강 적신호, 색에 대한 집착으로 추해가는 자화상, 예민함으로 마음의 평정을 잃는 정신질환, 배신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 자기 실수로 인한 자괴감, 죽음의 공포 등 크고 작은 아픔들이 잠재의식에 악마의 발톱처럼 박혀 있다. 자연이 제공하는 아픔,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상극이 만든 아픔은 이유도 치유의 약도 없다.(이상한 벌레가 있다. 나는 두려워서 밟는다. 그 벌레가 죽어가면서 죽는 이유를 알까?) 피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서 아픔만큼 아파야 한다. 그러나 정성부족이 만든 아픔, 스스로 위축되어 행동을 막는 아픔은 개선해야 한다. 불필요한 아픔으로 행복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행복은 아픔을 통해서 온다. 인내하자.

자연의 이법(理法)은 정확하고 바르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온다. 약한 나무는 바람에 쓰러지듯, 옳지 않은 일은 꼭 탈이 난다. 욕망에 잡히면 크고 작은 옳지 않은 일을 저지른다. 당장의 이익 때문에 거짓 설명을 하고,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경쟁자를 음해하고, 때로는 본성을 이기지 못하여 반칙을 범하고, 천륜과 인륜에 벗어난 짓도 한다. 쓰레기장에서 장미가 필 수는 있지만 아름다울 수 없듯, 옳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벌수도 있고, 옳지 않은 대상을 통해 쾌감을 얻을 수도 있지만, 옳지 않음을 통해 온전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방법이 옳지 않으면 결과도 비정상이다. 행복하려면 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바르게 산다는 것은 거미줄로 바람을 잡는 것처럼 어렵다. 바르게 살려면 생각은 진수(眞髓), 행동은 진국, 정성은 진혼(鎭魂)을 담아야 한다. 바르게 살자. 정도의 길이 험하지만 아름답다.

폭풍우가 몰아치더라도 뿌리와 연결된 줄기는 살고, 뿌리와의 인연이 끝나면 죽는다. 뿌리는 줄기를 통해서 살고, 줄기는 뿌리의 힘으로 사는 것이다. 인간의 생존도 자연 이법에 뿌리를 두고 있고, 우리는 부모를 뿌리로 태어났다. 부모 없이 태어난 영웅 설화도 있지만 과학의 눈으로 보면 믿음 지수는 낮다. 부모를 통해서 생명을 얻고, 자신이 또한 부모가 되어 후손을 낳는다. 뿌리 없는 쇠기둥에서 꽃은 피지 않는다. 뿌리 없이 태어난 생명체는 없다. 부모를 통해 이 지구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부모는 고마운 대상이자 작은 신과 같은 존재다. 뿌리에 대한 감사의식 을 갖자. 부모에 대한 감사함은 자기 긍정의 시작이다.

자연을 들여다보아야 세상 원리와 내가 가야할 길이 보인다. 자연의 원리를 알면 빛과 그림자가 다르지 않다. (빛이 있어 그림자가 있고, 그림자가 있어 빛이 빛난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하듯, 거짓은 참을 이기지 못한다. 세상은 진실과 실상으로 회귀한다. 신의 촘촘하게 설계한 자연 도면과 신의 설치한 그물망을 피할 수 없다. 우주의 시작과 끝, 생명체의 진원지, 인류의 처음과 끝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처음과 끝을 모른다. 모르고 안 보인다고 그 실체의 중심을 의심하면 한 점으로 축소가 되고, 안 보여도 느낄 수 있으면 마음은 우주 영역으로 확대된다. 세상을 움직이는 에너지의 근본은 신이다. 그렇게 믿고 행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유리하다. 자연을 통해 나를 보고, 신을 통해 보이지 않는 나를 살피자.

쓰러진 꽃이 자연의 힘과 생명력으로 부활하듯, 인간의 상처는 열정과 기도로 치유해야 한다. 상처를 치유하려면 절실해야 한다. 절실하게 추구하면 꿈을 이룬다고 했다.’ (切實)이란 절박함 혹은 긴요함, 진지함과 바램, 기원과 기도 등 뭔가 주도적 자세와 긴장감이 배어 있는 단어다. 간절하게 바라면서 노력하면 이루어진다. 절실한 꿈,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장독대에 정화수 떠놓고 자식이 잘되기를 간절하게 빌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절절히 빌면 기적도 일어난다고 했다. 절실한 꿈이 있으면 상처는 영혼을 괴롭히지 못한다. 절실함은 행동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자기 일을 열정적으로 즐기고, 재치와 유머로 자기와 남까지 즐겁게 하고, 고난과 고통을 용기라는 들배지기로 제압하고, 성실이라는 안다리 기술로 장애와 고난을 무너뜨리면 엔도르핀이 생겨나 어떤 일을 해도 즐겁고 일마다 행복하다. 지금 힘이 들어도 행복하다는 믿음은 절박해야 한다.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쉽게 일이 성사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일을 쉽게 하려고 하면 실망과 두려움이 생겼다. 학생이 공부를 쉽고 하려고 하면 공부가 지겨워 지고, 직장인이 일을 쉽게 하려고 하면 일에 빈틈이 생기고, 군인이 훈련을 쉽게 하려고 하면 전쟁이 두려워진다. 지금 서로 엇물린 세상은 일을 쉽게 하는 것을 허용하지도 않지만, 설사 일이 쉽게 되면 재미가 없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된다면 사는 재미가 있겠는가? 행복하려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운동 삼아, 혹은 정신 수양 삼아서 해야 한다. 행복을 만드는 공사에는 발명품이 없다.

보다 편리하게 살기 위한 발명품이 넘치지만, 행복을 쉽게 만드는 발명품은 없다. 몸이 편하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며, 인생 고해 속에서 행복을 얻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복은 육신과 정신의 연동 속에서 생기는 산물임을 알고 행복이 쉽게 이루어지기를 바라지 마라.


우리는 행복을 구하는 수행자들이다. 보왕삼매론(『보왕삼매염불직지』의 총22편 가운데 제17편에 실린 십대애행(十大碍行)으로, 수행에 따르는 장애를 극복하는 10가지 지침이며, 보왕삼매론의 저자는 중국 명나라 초기 선승인 묘협, 명나라 말기 고승(高僧)인 지욱(智旭)이라는 2가지 설이 있다.) 의 어투를 살려서 행복 삼매론을 지어본다.


가) 가장 큰 자리를 바라지 말라. 큰 자리에 가고자하면 적이 생기나니, 작은 자리로 반석을 삼고, 나) 나만을 위해 일을 도모하지 말라. 나만을 위하면 사방의 기운이 흐트러지므로 함께 하는 것으로 기운을 보존하라. 다) 다 얻으려고 하지 말라. 다 얻겠다고 욕심을 내면 하나도 구하지 못한다.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것으로 평화를 얻고, 라) 라면을 태워서 라면을 끓이지 말라. 이는 욕망으로 욕망을 다스리는 격이니, 욕망이 나고, 오고,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평상심을 지키고, 마) 말로 믿음을 사지도, 말에 믿음을 두지도 말라. 말로 믿음을 사려고 하면 부풀리고 속이게 되므로 행동으로 믿음을 구하자.


바) 바로 일이 성사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천운을 능력으로 착각하므로 어렵게 일이 이루어지는 것에 감사하고, 사) 사건과 사고가 전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삶이 평탄하면 발전이 없으므로 사건과 고난으로 일을 이루고, 아) 아름다운 행복만 있기를 바라지 말라. 행복만 바라면 실망과 불행이 넘치게 되므로 불행을 행복의 출발선으로 삼고, 자) 자연이 내 뜻을 따르길 바라지 말라. 자연을 인위적으로 움직이려는 것은 몸으로 영혼을 다스리는 격이니, 그냥 자연의 일부가 되고, 차) 차선(次善)을 바라지 말라. 차선을 염두에 두면 행동이 느슨해지나니, 최선을 다하고 차선을 기대하지 마라. 행복 삼매론은 고난과 장애를 행복으로 바꾸는 현대적 기술이다.


<아하~~ 행복 포인터>

오늘 이 순간, 나를 돌아보자. 나의 아픔은 어디서 왔을까? 아직도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고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나의 뿌리에 대해 충심으로 감사하며, 자연의 이법을 알고 절박하게 행동하고 있는가? 생각하고 다듬을 시간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