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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人 칼럼

내 마음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 영혼의 자유를 누려라


두 편의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마음의 비밀을 말하고 싶다. 우리가 실수하고, 고통 받고, 불행에 빠지는 것은 불완전한 마음이 육신을 끌고 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선과 악, 완전과 불완전 사이에 놓여서 갈팡질팡 한다. 마음은 우주의 팽창처럼 끝없이 상상하면서 새로운 창조도 하지만, 마음이 작아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도 없고 상식 이하의 엉뚱한 짓을 한다. 마음이 어둠과 손을 잡으면 불편하고 칙칙한 행동을 하고, 어두운 마음을 밖으로 밀어내려고 하면 더 달라붙는다.

마음이 작아져서 엉뚱한 분풀이를 한 사건 하나를 고백한다. 컴퓨터를 켜자, 악성 프로그램을 삭제하라는 배너가 떴다. 무시해도 똑 같은 배너가 자꾸만 뜨기에 <삭제하기> 박스를 눌렀더니 결제를 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컴퓨터를 지킬 사명감으로 결제를 했더니 매달 돈이 빠져나갔다. 더 당하지 않으려고 프로그램을 지워버려도 성가시게 자꾸만 떠올랐다. 아뿔싸, 죄 없는 컴퓨터가 주먹에 맞아 터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쁜 기계(프로그램)에게 시간과 자유를 뺏겼다고 생각하니 울화통이 치밀어 벌어진 일이다. 사실은 기계의 언어가 나의 의지를 시험하고 자유를 제한하고 행동까지 어지럽힌 것이 아니라 작고 옹졸한 마음 때문에 생긴 일이다.

어둠과 손을 잡은 마음 때문에 비상식적인 행동을 한 이야기다. 5년 전에 생긴 손톱무좀이 성가시게 했다. 약을 먹어도 치료가 되지 않았다. 통증이 올 때는 손가락을 잘라 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팠다. 하필 나에게 이런 아픔이 있을까? 원망도 하고, 손톱 깎기로 끝 부분을 잘라내어 피를 흘리기도 하고, 바늘로 후벼 파보았지만, 뿌리 깊은 무좀 조직은 그대로 붙어 있었고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류 시화 시인의 <들풀>이라는 시, - 슬픔은 슬픔대로 오게 하고, 기쁨은 기쁨대로 가게 하라.- 를 읽고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하라는 화두를 잡고 나서야, ‘이 무좀도 살려고 태어났구나! 나의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자, 라고 생각했고, 아파도 그대로 방치를 했더니 손톱무좀이 사라졌다.

컴퓨터 파손 사건과 무좀 치유 과정은 내게 ‘인간의 마음은 전부가 아니다. 마음보다 더 존재가 있을 것이다.’라는 화두(글감)를 주었다. 마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마음은 모든 판단과 결심의 우두머리이자, 행동의 뿌리지만 마음이 전부는 아니었다. 마음은 고통을 찾아가는 유도장치라도 있는 듯, 작고 어두운 골목으로 찾아가서 스스로 고통을 만든다. 사소한 일에 마음이 잡혀서 끙끙 거리고, 상상으로 의심하고, 징크스에 잡혀서 몸까지 고생하고, 스스로 막연한 두려움을 만든다. 마음이 걸림 없이 날개를 펴지 못하면 마음은 구겨진 휴지처럼 접히고 초라하다. 마음은 어둠을 끌어당기는 자석이라도 있는 듯, 부정적이고 불편한 생각으로 이상한 행동을 하고, 뒤 늦게 부정적인 마음을 생각 밖으로 밀어내려고 하면 더 달라붙는다. 어떤 마음을 지우려고 하면 더 크게 자라나기 때문이다.

이제 스스로를 위로하자. 그동안 겪은 실수, 고통, 불행은 나의 행동 잘못도 있지만, 온전하지 못한 마음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제 실수와 고통을 줄이기 위해 마음의 강도를 높이는 길을 찾아보자. 화가 나고, 불안하고, 두려움이 생기면 3초 만이라도 자기를 챙기자. ‘지금 이 마음이 나의 마음일까? 지금 이 마음보다 세고 세련된 마음은 무엇일까? 이 마음보다 더 센 존재는 없을까?’ 한 박자 쉬면서, 마음의 테두리 밖에서 존재하는 영혼을 생각하고, 마음 위에 별도로 존재하는 영혼을 받아들이자. 고통도 불행도 인생의 과정으로 알고, 고통과 싸우려고 하지 말고 동반자로 삼아서 꿋꿋하게 나가자.

마음은 시공을 초월하는 위대한 힘도 있으면서, 작은 아집에 잡히면 변덕을 부린다. 인간 한계다. 마음이 불자(不字) 언어들(- 불안, 불만, 불평, 불확실, 불완전-), 무자(無字) 언어들 (-무지, 무시, 무책임, 무성의, 무계획-)과 동맹을 맺으면 아무리 좋은 일도 살아남지 못한다. 마음이 옳다 그르다는 특정한 기준이 있을 수 없지만, 마음이 옳은 상태에 놓이면 자유롭고 걸림이 없다. 인간은 행복을 몰라도 자유로울 수 있지만, 자유가 없으면 행복은 없다. 마음을 옳은 상태로 지속시키고, 마음만큼 자유롭게 하는 방법을 찾아보자.

마음만은 절대 자유를 누리자. -마음의 자유
인간은 불편한 자유인이다. 인간은 보다 자유롭기 위해 문명의 도구와 사람을 부리지만, 부리면서(지배하면서) 부림(지배)을 당한다. 인터넷을 부리면서 해킹을 당하고, 핸드폰을 활용하면서 자기 위치를 노출시키고, 부하를 부리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몸을 사용하고 영혼의 씀씀이를 결재하는 것은 ‘나’인데 대상에 집착하면 대상에게 잡혀서 나를 잃는다. 어디에도 잡히지 않는 바람처럼 진정한 자유인이 되려면 마음을 비우고 길들여진 타성을 깨야 한다. 열린 생각으로 새로운 세계를 찾고, 선택과 권리에 욕망을 섞지 말고, 세상을 넓게 보아야 한다.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는 마음이 만드는 자유다. 인간에게 욕심이 있는 한 돈과 시간으로부터 자유는 없다.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행복한 자유, 상대가 시비를 걸어도 평상심을 유지하는 자유만이 있을 뿐이다. - 마음의 크기만큼 자유로울 수 있다.


스스로 만든 구속을 깨라. - 행동의 자유
나의 자유를 억압하고, 나를 구금하고 구속하는 것은 타인과 불공정 사회가 아니라 집착과 걱정, 예민한 자존심과 계산의식 등 마음의 질병이다. 마음의 질병은 행동의 자유를 막고 주저하게 하는 고삐다. 마음은 무한 자유의 세계에 놀 수 있지만, 마음이 욕심에 잡혀 작아지면 바늘 하나 세울 자리도 없다. 손해를 볼까봐 작은 일에도 마음이 걸리고, 불쾌한 일로 마음 상하고, 욕심을 놓고 버리지 못하면 잡히고, 붙들리고, 허상에 속는다.


미워하면서도 정(情) 때문에 관계를 끊지 못하고, 미련과 후회로 과거에 잡히고, 계산과 구분의식에 붙들려 평정을 잃고, 명분에 잡혀서 내실을 잃고, 가깝다는 이유로 가까운 이를 너무 간섭하여 불화를 만들고, 다양한 관계 때문에 가기 싫은 자리도 가야한다. 나의 마음과 행동을 불편하게 괴롭히는 것은 자기가 만든 원죄와 타성에 잡히기 때문이다. 욕심으로 능력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 남의 자유마저 유린한다. 스트레스를 푼다고 술과 담배, 게임과 극단적 취미에 빠지면 (본인들은 자기가 도구를 애용한다고 하지만), 도구의 노예가 된다. - 나의 자유는 내가 만든다.


너무 남을 의식하지 마라. - 대인관계의 자유
더불어 사는 사회는 서로가 고삐가 되어 서로의 행동을 제한한다. 공동운명체의 고삐는 개인을 불가피하게 부자유(교통 신호에 걸리고, 법에 걸리고, 때로는 헌법에도 없는 괘씸죄에 걸리는)하게 하며, 사회의 다양한 고삐(인간은 평등하다고 하면서 서열을 매기는 인습의 고삐, 서로 살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공동운명체 고삐, 구더기 무서워 상식적 편리마저 폐기하는 규제의 고삐, 개인별 사정을 무시하는 시스템의 고삐,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대본과 도면의 고삐)들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 공동운명체와 사회의 고삐는 개인의 자유를 일정부분 앗아간다.


스스로 만드는 고통의 고삐가 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이치를 모르면 부자유의 고삐에 바로 잡힌다. (공짜 마케팅에 속으면 자기 정보를 노출시켜 무수한 스팸에 시달린다.) 남을 너무 의식하면 스스로 멍에를 지고 부자유(위축과 두려움, 체면과 형식)를 초래한다. 내가 지금 어떤 고삐에 걸려 사는지를 돌아보고, 내 인생은 나의 것으로 선포하고,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나의 자유를 찾아야 한다. - 사회가 제공하는 고삐와 내가 만든 멍에에 잡히지 말고 당당하게 나가자.


욕망을 해방시켜라. - 영혼의 자유
자유는 육체와 영혼의 조화에 있다. 욕망이 억압된 상태에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없다. 팔딱거리는 욕망은 누가 억압한다고 죽지 않지만, 영혼이 욕망을 안아야 진정을 취한다. 욕망은 영혼 속에서만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영혼이 작은 울타리를 치고 고고하게 굴면 정신은 고집과 의심에 잡히고, 몸은 도구, 게임, 영상에 중독되어 자기도 모르는 대상에게 자기를 뺏긴다.


자유롭고자 하면 모든 것을 크게 보는 영혼이 필요하다. 자기 기준과 숫자에 길든 자기 판단으로 세상과 상대를 비난하고 불평하지 말자.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에너지와 저마다의 DNA에 설정된 프로그램에 의해 살고 살아가고 있다. 저마다의 생존 방식이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지성과 권력을 갖고도 영혼을 파는 사람은 그릇이 작기 때문이며, 영혼을 팔 수 밖에 없는 사람은 삶이 벅차기 때문이며, (자기 관리에 실패하여) 추한 사람은 영혼이 욕망의 프로그램을 이기지 못할 뿐이지 원래 악인이 아니다. 영혼의 눈으로 보면 선과 악의 구분, 이익과 손해의 경계선이 사라진다. 그러나 영혼은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자유, 소수의 이익과 편리를 위한 자유는 용서하지 않는다. - 자유는 욕망과 영혼(양심)의 결합물이다.


오늘, 고통과 실수가 있었다면 그 원인을 생각해보자. 삶이 즐겁지 못하다면 나의 자유와 행복 지수를 점검해 보자. 지수(地水)와 화풍(火風)의 결합체인 인간은 죽으면 지수화풍을 자연에 돌려주고 자유의 기운으로 돌아가지만, 죽어서 자유를 찾는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살아서 자유로워야 한다. 그 방법은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