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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성 이야기

[부부사이] 골백번 각서 쓰는 남자들


어느새 새해가 온 지도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해가 바뀌면 자기 나이를 생각해보기도 하고, 뭔가 달라지고 싶어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기도 한다. 물론 ‘해가 뭐 한두 번 바뀌나, 지키지도 못할 거 뭣 하러 결심해’라며 조금은 반항적으로, 심드렁하게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죽이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국가나 기업은 약속을 할 때 서류를 주고받지만 부부는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말로만 할 때가 많다. 남성은 연애할 때부터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주겠다’는 둥, ‘공주로 떠받들고 살겠다’는 둥 갖은 맹세를 남발한다. 지키지 못할 공약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여자는 그저 듣기만 해도 행복했다. 그러나 살다 보면 그게 작업멘트에 불과했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때부터 무수리는 험악해지고 말로 하는 건 못 믿겠으니 각서 쓰라고 바락바락 악을 쓰며 닦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런 각서는 골백번 써 봤자 효력이 없어 쓸데없다.

각서를 남발하는 또 다른 시절은 새해다. 새해가 되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을 자주 한다. 아주 막연한 말이지만 소망이 다 이뤄지라는 뜻이다. 새해 소망이 돈 많이 벌기도 있지만 금주, 금연, 운동, 다이어트인 사람들도 많다. 미국 타임지가 ‘깨지기 쉬운 10가지 결심’을 소개했는데 사람의 마음은 동서양이 똑같은 것 같다. 살 빼기, 운동, 금연, 새로운 것 공부하기, 건강한 식생활, 빚 갚고 저축하기, 가족과 더 많은 시간 보내기, 여행하기, 스트레스 덜 받기, 봉사하기, 술 덜 마시기다. 미국도 1월이면 헬스클럽 회원 수가 증가하지만 한 달만 지나면 평년 수준으로 돌아간단다. 1월 초에는 담배나 술 회사 매출이 10%가량 하락하지만 그 회사들이 큰 걱정을 하거나 대책을 세우는 호들갑을 안 떠는 이유는 1월 중순 이후엔 다시 예전 매출 수준으로 회복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벌써 거창하게 세웠던 목표가 흐지부지되거나 약발이 슬슬 빠져 이미 작파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지만 일단 칼을 뺐으면 동생 연필이라도 깎아줘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하는 약속이 금연이기도 하지만 가장 기대하지 않는 공약 또한 금연이다. 골초들은 그저 매년 결심만 한다. 금연을 선언한 남편이 추운 베란다로 나가 달달 떨고 들어오거나 아내 눈치를 슬슬 보며 피한다면 남편은 진창에 빠진 것이다.

남편이 담배를 끊으면 혼자만 좋을까? 니코틴 때문에 음경 혈관 벽이 헌다. 딱지가 들러붙은 혈관에 피가 잔뜩 들어가 줄 리 없으니 남편은 꼬부라진 거시기를 펴보려고 하지만 헛발질만 하게 된다. 이런 남편이 꼴 보기 싫은데 담배를 끊으면 딱딱해지는 건 시간문제니 아내는 반갑게 맞이해 즐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당신이 하는 일이 그렇지 뭐. 내 그럴 줄 알았다’며 쏘가리처럼 쏘거나 배배 꼬며 타박하지 말고, 담배가 고플 때 대신 즐길 만한 주전부리를 대령하거나 맛깔스러운 안주를 준비해 간단히 한두 잔 해보자. 아내 성의가 괘씸해서라도 남편은 뱀 같은 유혹을 뿌리칠 것이다.

삼겹살에 소주가 눈앞에 왔다 갔다 하고 구수한 담배 냄새가 유혹하더라도 눈 딱 감아 버리자. 술 덜 마시니 살 빠져 좋지, 담배 끊고, 풀 많이 먹고, 스트레스 덜 받고, 같이 운동하고, 같이 여행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건강은 받아 놓은 밥상일 것이다. 그러면 팬티 속에 숨죽이고 있던 남성이 우뚝 솟을 것이 뻔하니 사는 재미가 새록새록 날 것이다. 대한민국 아줌마 아저씨들, 모두 복 많이 받아 웃음이 실실 나오는 그날까지 작심 365일 쭈욱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