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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성 이야기

[성경(性敬)시대] 초콜릿처럼 살고 싶은 중년


로맨틱한 키스와 초콜릿, 꽃다발을 주고받던 연애가 결혼이라는 굴레에 묶이는 순간, 낭만은 서서히 사라진다. 예전에는 주머니 사정이 별로여도 마음만은 풍요로웠다. 그러나 오래 살다 보니 시큰둥한 사이가 된 부부는 서로 멀미를 한다. 밸런타인데이네 화이트데이네 하면서 젊은 애들이 살판난 것처럼 흥분할 때, 먹고살기도 힘든 판에 웬 놈의 기념일이 왜 그렇게 많냐며 모르는 척한다. 그러나 어떤 남편이나 아내도 관심 가져주기 바라는 것은 마찬가지다. 밸런타인데이가 비록 잘못 전해진 서양 풍습이고 상업적으로 퇴색돼 비난의 목소리가 크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 마음을 설레게 하는 날임에는 틀림없다.

초콜릿 선물을 받아도 누구에게서 받았느냐가 중요하다. 회사에서 의례적으로 여직원들에게 몇 개 받기는 했지만 퇴근해서 아내가 건네주는 초콜릿에 비할 바 아니다. 피식 웃으면서 받아주면 좋으련만! “유치하게 이런 걸 왜 사? 애들도 아니고. 당신 밸런타인데이가 왜 생긴 줄이나 알아? 장사치들이 초콜릿 팔아먹으려고 그런 거야. 괜히 쓸데없이 돈만 쓰고…돈이 썩냐 썩어?”라고 찬물을 끼얹는다면 이제 앞으로 죽을 때까지 초콜릿 받기는 다 틀렸다. 남편은 며칠 동안 아침밥을 굶어야 할지도 모른다.

실상 겉으로는 뭔 짓들이냐고 쓴소리를 해대는 남편이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기대한다. 뭐 이런 걸 주느냐고 근엄을 떨어보지만 이미 콧구멍은 벌렁거리고 미소가 새어나온다. 아내가 아무것도 안 챙기고 입 싹 씻으면 서운하기 짝이 없고 괜히 집구석이 왜 이 모양이냐는 둥, 반찬이 어떻다는 둥 트집 잡고 싶어진다. 더 심각한 것은 남편이 바깥에서 초콜릿을 받아들고 들어오든 말든, 질투조차 하지 않는 아내다.

사랑의 적(敵)은 시간이다. 더 이상의 기대와 설렘이 없는 부부에게는 불경기에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듯 사랑의 투자가 필요하다. 아스팔트 길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군데군데 파이면 땜질하는 것처럼 살다가 생긴 구멍 난 애정도 때워야 한다. 그렇게 부부 사이도 가꿔야 한다. ‘달 따다 준다 했던 약속을 지키라’며 악을 써댄들 메아리가 오겠나. 귓가에 바람 넣어가며 속삭여주던 약속은 부도어음이 돼버렸다. 진심은 우주의 파장을 통해 전해진다. 젊은이들의 명절,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는 중년부부에게도 애정을 확인하고 표현할 수 있는 판을 벌여주는 것이니 엄청시리 고마워해야 한다. 상술에 적당히 속아주면 느슨했던 관계가 단단하게 묶일 것이니, 남편을 위해 하루쯤 요란을 떨어봐도 좋을 것 같다. 아내라면 단 하루만이라도 치어리더가 돼보자. 회사로 선물을 보내는 깜짝이벤트와 함께 ‘고마워요. 여보, 사랑해요’라며 문자에 하트까지 날려주면 빨리 집에 가고 싶지 않은 남편이 있을까?

초콜릿에는 뭔가 즐거운 일에 빠져 있을 때나 사랑을 느낄 때 분비되는 페닐에틸아민이 들어 있다. 그래서 ‘사랑의 묘약’이라 불린다. 항산화제인 폴리페놀 성분도 있어 노화 방지 효과도 있다고 한다. 얼마 전 TV 드라마에서 커피 거품이 묻은 여자와 키스하는 장면이 나와 전국의 여자들의 부러움을 산 적이 있다. 쑥스럽기는 하지만 장난기 있는 분위기로 입술에 초콜릿을 묻히고 입을 쑤욱 내밀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물론 남편은 키스로 화답해야 하고. 입안에서 맴도는 초콜릿의 달콤함을 넘어 진한 여운을 남기는 키스까지 더해진다면 세상은 온통 내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