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테크 투자칼럼

어릴때부터 억대 통장 만들기, ‘왜?’도 함께 가르쳐 주세요


“우리 아이 통장에는 벌써 1000만원이 넘게 들었습니다. 열두 살쯤에는 1억원 정도 쌓이게 해주고 싶어요.” 다섯 살짜리 딸을 키우는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다. 그는 세뱃돈이나 어른들이 주는 돈과 돌잔치 때 받은 금반지를 판 돈 등을 차곡차곡 모아 아이 이름으로 된 통장에 모아왔다. 그리고는 딸아이에게 자주 통장을 보여주며 숫자를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열두 살쯤에는 1억원을 모을 수 있다는 목표의식을 환기시켜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1억이란 숫자는 참으로 특별하다. 재테크 열풍을 몰고 온 것도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1억원 모으기’에 열광할 때부터이다. 더 나아가 <12살에 백만장자가 된 키라>라는 책은 자녀 경제교육과 재테크 입문서의 기본도서가 되기도 했다. 재테크 열풍의 강도가 짙어지면서 1억원에 대한 열풍은 10억원으로, 다시 100억원으로 증식해 왔다. 숫자가 커질수록 사람들은 돈에 더 심하게 집착하거나 반대로 돈에 더욱 냉소하는 태도로 양분된다.

최근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행복학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긍정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목표 설정은 자신감과 능력을 자각하게 해주고 계속 노력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준다고 한다. 막연히 저축하는 것보다는 어떤 뚜렷한 목표를 정해 놓고 강제하는 것이 저축에 효과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목표 설정 과정에서 모든 목표가 사람에게 긍정적인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은 아니다. 긍정심리학자들의 오랜 연구결과에 따르면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경제적인 목표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우울과 불안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짓는다. 조사에 따르면 물질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기실현 욕구와 활력, 행복 수준이 떨어지고 불안과 신체적 이상증세, 불행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12살에 1억원이 든 통장을 만들어 주려던 그 아버지 역시 자신이 ‘아이에게 제대로 된 경제교육을 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고 있었다. 아이가 돈을 모으려고만 할 뿐 절대로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여전히 부모에게 떼를 쓴다. “네 돈을 쓰면 되잖니”라는 말에는 자기 돈은 통장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아까워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실제 필요한 돈은 당연히 엄마 아빠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엄마 아빠에게서 나오는 돈은 자기 돈이 아니니 당연히 아끼지 않는다.

12살에 키라와 같이 든든한 억단위 통장을 갖게 될 수는 있겠으나 돈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자랄 위험이 있다. 어린 자녀와 마찬가지로 성인에게도 막연히 큰 돈을 모으려는 욕구는 여러가지 위험을 만들어 낸다. 돈은 사람의 필요와 욕구를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이라는 본질적인 의미를 잊어버리고 돈 그 자체에만 집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 자체가 목적이 되어, 무조건 많은 돈이 있어야 한다는 잘못된 강박에 시달리기까지 한다. 이런 강박은 정작 돈으로 이루려 했던 인생의 목표를 망각하고, 자기 내면의 건전한 욕구를 자각할 수 없다. 오직 타인과의 비교나 미디어를 통해 조작된 허상에 자극받아 늘 불행해 하면서 잘못된 경제생활을 하게 된다.

지난 몇 년간의 부동산 열풍, 그로 인한 가계부채 증가가 바로 이러한 경제관념의 왜곡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제라도 숫자가 아닌 자신의 필요와 건전한 욕구에 맞도록 돈의 용도를 설계하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